국정농단 의혹' 통일교 심층분석
"종교지도자 한학자를 대상으로 한 법적 조치는 매우 우려스럽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한학자 총재를 비호하는 이 발언은 한국 정치권 또는 종교계 인사로부터 나온 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미국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CIA) 국장·국무장관을 지내며 '실세'로 불렸던 마이크 폼페이오가 지난 4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은 글이다. 폼페이오는 "종교의 자유 침해 행위가 갈수록 심해지는 건 한국이 지지해야 할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해당 언급은 통일교 방어를 위한 폼페이오의 '지원 사격'으로 해석됐다. 통일교를 수세에 몰아넣은 주체는 김건희 여사 의혹을 파헤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다. 통일교가 김 여사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을 매개로 윤석열 정부에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의혹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특검은 통일교 시설을 수차례 압수수색했고, 이제 한 총재를 정조준하고 있다. 통일교 관련 의혹을 '국정농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폼페이오의 발언은 통일교가 보낸 'SOS'에서 비롯됐을 공산이 크다. 그는 2021, 2022년 통일교 유관 단체인 천주평화연합(UPF)의 영상 강연에 잇따라 출연하는 등 '인연'이 있다.
1954년 창시… 70년대 美 선교 본격화
통일교가 정치권과 '밀월 관계'를 맺기 시작한 건 박정희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교는 1960·70년대 반공 이념을 강조하며 당시 군사정부의 지원 아래 '국제승공연합'을 조직했다. '정치적 기반 강화'와 '교세 확장'을 추구한 둘은 공생하는 사이가 됐다. 1977년 '프레이저 보고서'로 알려진 미국 의회 조사에선 양쪽의 이 같은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탁지원 현대종교 소장은 "정치인들은 이단(으로 인식되는) 종교와의 커넥션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그들의 조직력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자금과 표심이 크다. 이단 종교 입장에선 (권력자의) 비호를 받는 한편, 정치인들에게 기대서 영향력도 확보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정치권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후 통일교는 교리를 내세워 '바깥'으로 확장해 갔다. 통일교 교리는 '인류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대가족을 이루고,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게 최종 목표'라는 내용이다. 즉, 세계 단일 국가이자 세계정부라 할 수 있는 '천주평화통일국'의 건설이 지상과제인 것이다. 다른 이단 종교들은 국내 포교에 집중했던 반면, 통일교가 창립 초기부터 '전 세계적인 선교'를 목표로 삼았던 건 이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과 인연을 쌓기 시작한 시점도 그 무렵이다. 통일교는 1973년 워터게이트 사태로 위기에 처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도 로널드 레이건·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관계를 맺는 등 주로 공화당 후원을 등에 업고 성장해 나갔다. 이에 더해 1982년 보수 성향 일간지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하며 미국 내 언론 사업에도 나섰다. 워싱턴타임스는 오늘날 통일교와 미국 우파 정치권 인사들 간 주요 연결 통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교 내부 비리 등을 지속적으로 고발해 온 최종근 통일교부정부패추방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워싱턴타임스는 통일교 측에서 받은 자금 수백억 원 중 상당 부분을 공화당에 정치 헌금으로 제공하며 미국 보수 원로들과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8년간 일본서 연평균 '3900억 원 헌금'
3월 25일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통일교의 2015~2022년 헌금 수입(빨간색)과 총자산 그래프. 2022년 7월 아베 신조 총리 피살 사건 후 통일교의 헌금 수입은 전년에 비해 29% 감소한 354억 엔을 기록했다. 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포교 활동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통일교의 자금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첫 번째는 사업이다. 통일교는 기업 활동을 위해 '통일그룹'을 만들어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교육·언론·건설 등 여러 분야에서 계열사를 만들어 사업을 확장한 결과, 현재 자산 규모는 수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는 헌금이다. 특히 일본인 신도들의 성금이 통일교의 핵심 돈줄이다. 전 세계 신도 중 일본인 비중이 높은 편으로 알려졌는데,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 내 통일교의 2015~2022년 연평균 헌금 수입 규모가 409억 엔(약 3,864억 원)"이라고 보도했다. 202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살 사건에서도 이는 어느 정도 드러난다. 범인은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헌금한 탓에 가정이 파탄 나 분노했다. 통일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베를 범행 대상으로 노렸다"는 취지로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유명 인사에 돈 쏟아부어… 트럼프 강연료 '1분 1억 원'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 삼아 통일교는 정치권 로비를 이어갔다. 돈이 권력을 낳고, 권력이 다시 돈을 낳는 구조가 된 것이다. 특히 유명 인사 섭외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트럼프는 2021, 2022년 통일교 측으로부터 '영상 강연 3회'의 대가로 무려 250만 달러(약 35억 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 회당 영상 분량은 10분 남짓. 평균적으로 말하자면 통일교가 지급한 트럼프의 강연료는 '1분에 1억 원 이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통일교의 '위세'는 최근 수년 사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결정적 계기는 2022년 아베 피살 사건 이후, 일본 정부의 '통일교 법인 지위 박탈 및 해산 명령'이다. 일각에서는 통일교가 일본발(發) 타격을 만회하기 위해 이 시기를 전후해 김건희 여사·국민의힘에 접근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결과적으로 '최악의 한 수'가 됐다. 특검 수사망에 걸려든 통일교 의혹은 △국민의힘 무더기 입당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1억 원 제공·청탁 △건진법사를 통해 김 여사에게 명품 선물 전달·청탁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재 통일교는 여론전에 사활을 건 듯한 분위기다. 유명 인사들의 입을 통해 '종교 탄압' 프레임을 조성하려 한다는 얘기다. 폼페이오 사례만이 아니다. 뉴트 깅그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도 지난달 27일 워싱턴타임스에 "한국 이재명 정부의 전면적인 정치·종교 탄압은 숨 막힐 지경"이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또 나중에 "오해였다"고는 했으나,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한국 대형 교회 압수수색'을 거론하며 우려를 표명한 것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순직 해병 사건 특별검사팀의 순복음교회 압수수색을 가리킨 발언이라는 게 지배적 해석이지만, 일각에선 '통일교 압수수색을 지적한 것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통일교의 '종교 탄압' 프레임 시도? 안 통할 것"
진용식 한국기독교 이단상담소협회장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진 회장은 "유력 정치인들을 돈으로 매수해 앞세우는 통일교의 전략은 반대 세력을 압박함으로써 살아남으려는 것"이라며 "최후의 발악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통일교가 종교 탄압으로 이슈를 돌리려 하는데, 특검 수사는 오랫동안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해 왔던 자신들의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제재'임을 깨닫고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참에 정치와 종교의 유착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탁지원 소장은 "이번 통일교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옴에 따라, 정치권과 종교계가 당분간은 조심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얼마 안 있으면 다시 (공생 관계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기에 철저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헌법상 '정교 분리의 원칙'을 다시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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