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000인에 대한 대총회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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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admin
Date
2024-05-16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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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최근에 제가 쓴 “요한계시록 주석”에 있는 144,000에 관한 일부입니다.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각주는 여기에 나타나지를 않아 죄송합니다.
계 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재림교회 주석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세 가지 견해를 요약 제시한다.
첫째, 큰 무리는 144,000과 같은 무리이다.
둘째, 큰 무리는 144,000과 다른 무리이다. 전자는 “각 시대의 승리한 성도로 남아 있는 자들”이고, 후자는 특별한 무리이다.
셋째, 큰 무리는 144,000을 포함하는 구속받은 전체의 무리이다.
세 견해 중 재림교회는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1992년에 대총회의 성경연구위원회가 펴낸 계시록 주석에는 재림교회의 전통적인 견해를 소개하면서 첫째 견해를 지지하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즉 144,000인과 큰 무리는 다른 환경 하에 있는 동일한 그룹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세 견해 중에 두 무리가 동일한 무리라는 입장이 더 타당하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문맥을 관찰해 보면 3절의 인을 맞는 “하나님의 종들”과 15절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그들”과 22:3의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는 “그의 종들”은 다 같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7장에서 144,000인과 큰 무리는 동일한 무리인 게 틀림없다.
둘째, 계시록에 같은 사건을 두고 시차에 따라 “내가 들으니”와 “내가 보니”로 표현한 요한의 문학적 기교 때문이다. 전자는 기대감을 일으키고 후자는 만족을 암시한다. 즉 본 것은 들었던 동일한 걸 설명한 것이다. 요한은 인침을 받는 자의 수를 들었다(4절). 또한 그는 같은 무리를 보았다(9절). 요한은 처음에 나팔 같은 소리를 들었으나(1:10) 보기 위해 돌이켰을 때에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1:12-13). 처음에 그는 유다지파의 사자가 이겼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보았다(5:5-6). 17장에서 그는 물위에 앉아 있는 음녀에 대해 들었으나 결국 붉은 짐승 위에 앉은 여인을 보았다(17:1-5). 마지막 계시에서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 신부에 대해 들었으나 그는 실지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았다(21:9-12). 처음에는 듣고 나중에는 실제로 보는 그런 패턴이다. 이런 배경에서 요한은 144,000인의 수를 들었고 나중에는 동일한 큰 무리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인과 큰 무리는 다른 환경 아래에 있는 동일한 무리인 게 확실하다. 전자의 계수된 무리는 환난의 입구에 있는 지상에 있는 무리이고 후자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리는 이미 환난을 통과하여 하늘에 가 있는 같은 무리이다. 큰 무리는 앞서 말한 144,000인을 다르게 말한 용어이다. 대총회에서 출판한 계시록 주석에서 니올(Beatrice S. Neall)은 주장하기를 계시록 7장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고 첫 부분(1-8절)의 상징적인 수인 144,000인은 종말의 투쟁하는 지상의 교회(church militant)이고 둘째 부분(9-17절)의 큰 무리는 하늘에 도달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서 있는 승리의 교회(church triumphant)를 묘사한 것이다. 전자는 지상의 환난을 통과하는 중이고 후자는 이미 인을 받아 환난을 통과하여 하늘에 가 있다. 따라서 앞 문단(1-8절)과 본 문단(9-17절)은 동일한 백성을 다른 각도와 다른 환경에서 본 동일한 장면이다. 또한 첫 부분은 요한이 귀로 들은 수이고 나중 부분은 그가 실제로 보고 있는 무리이다. 이리하여 전자는 후자를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라 했다.
얼핏 보면 144,000인과 큰 무리는 별개의 그룹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144,000인으로 말할 때는 전쟁에 나가는 군사적 한 단위로 말했고 큰 무리로 말했을 때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축제하며 찬양 경배 드리는 무리로 묘사한 것이다.
마태는 주께서 오시는 날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고 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할 전체 공동체를 상징한 상징적인 숫자이다. 계시록 7장에 나오는 무리는 두 무리인가 동일한 한 무리인가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입장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녀는 계시록 7:14-17을 144,000인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부활한 성도들을 포함하여 모든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큰 무리로 언급하는 듯한 곳도 여러 곳에 있다. 따라서 승천을 시점으로 하여 승천 전의 무리 즉 살아서 구원 얻는 자들과 부활한 성도들 모두가 144,000을 이루고 승천 후의 동일한 무리 즉 큰 무리로 호칭된 걸로 간주해야 된다. 니올(Beatrice S. Neall)은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지상에 두 개의 다른 백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을 요한계시록은 지지하지 않는다. 요한은 항상 하나의 백성만을 염두에 두고 “그 종들”(1:1), “남은 자손”(12:17), “성도들”(14:12) 등으로 지칭했다고 하였다.
계 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재림교회 주석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세 가지 견해를 요약 제시한다.
첫째, 큰 무리는 144,000과 같은 무리이다.
둘째, 큰 무리는 144,000과 다른 무리이다. 전자는 “각 시대의 승리한 성도로 남아 있는 자들”이고, 후자는 특별한 무리이다.
셋째, 큰 무리는 144,000을 포함하는 구속받은 전체의 무리이다.
세 견해 중 재림교회는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1992년에 대총회의 성경연구위원회가 펴낸 계시록 주석에는 재림교회의 전통적인 견해를 소개하면서 첫째 견해를 지지하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즉 144,000인과 큰 무리는 다른 환경 하에 있는 동일한 그룹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세 견해 중에 두 무리가 동일한 무리라는 입장이 더 타당하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문맥을 관찰해 보면 3절의 인을 맞는 “하나님의 종들”과 15절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그들”과 22:3의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는 “그의 종들”은 다 같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7장에서 144,000인과 큰 무리는 동일한 무리인 게 틀림없다.
둘째, 계시록에 같은 사건을 두고 시차에 따라 “내가 들으니”와 “내가 보니”로 표현한 요한의 문학적 기교 때문이다. 전자는 기대감을 일으키고 후자는 만족을 암시한다. 즉 본 것은 들었던 동일한 걸 설명한 것이다. 요한은 인침을 받는 자의 수를 들었다(4절). 또한 그는 같은 무리를 보았다(9절). 요한은 처음에 나팔 같은 소리를 들었으나(1:10) 보기 위해 돌이켰을 때에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1:12-13). 처음에 그는 유다지파의 사자가 이겼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을 보았다(5:5-6). 17장에서 그는 물위에 앉아 있는 음녀에 대해 들었으나 결국 붉은 짐승 위에 앉은 여인을 보았다(17:1-5). 마지막 계시에서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 신부에 대해 들었으나 그는 실지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았다(21:9-12). 처음에는 듣고 나중에는 실제로 보는 그런 패턴이다. 이런 배경에서 요한은 144,000인의 수를 들었고 나중에는 동일한 큰 무리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인과 큰 무리는 다른 환경 아래에 있는 동일한 무리인 게 확실하다. 전자의 계수된 무리는 환난의 입구에 있는 지상에 있는 무리이고 후자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리는 이미 환난을 통과하여 하늘에 가 있는 같은 무리이다. 큰 무리는 앞서 말한 144,000인을 다르게 말한 용어이다. 대총회에서 출판한 계시록 주석에서 니올(Beatrice S. Neall)은 주장하기를 계시록 7장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고 첫 부분(1-8절)의 상징적인 수인 144,000인은 종말의 투쟁하는 지상의 교회(church militant)이고 둘째 부분(9-17절)의 큰 무리는 하늘에 도달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서 있는 승리의 교회(church triumphant)를 묘사한 것이다. 전자는 지상의 환난을 통과하는 중이고 후자는 이미 인을 받아 환난을 통과하여 하늘에 가 있다. 따라서 앞 문단(1-8절)과 본 문단(9-17절)은 동일한 백성을 다른 각도와 다른 환경에서 본 동일한 장면이다. 또한 첫 부분은 요한이 귀로 들은 수이고 나중 부분은 그가 실제로 보고 있는 무리이다. 이리하여 전자는 후자를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라 했다.
얼핏 보면 144,000인과 큰 무리는 별개의 그룹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144,000인으로 말할 때는 전쟁에 나가는 군사적 한 단위로 말했고 큰 무리로 말했을 때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축제하며 찬양 경배 드리는 무리로 묘사한 것이다.
마태는 주께서 오시는 날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고 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할 전체 공동체를 상징한 상징적인 숫자이다. 계시록 7장에 나오는 무리는 두 무리인가 동일한 한 무리인가에 대한 엘렌 G. 화잇의 입장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녀는 계시록 7:14-17을 144,000인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부활한 성도들을 포함하여 모든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큰 무리로 언급하는 듯한 곳도 여러 곳에 있다. 따라서 승천을 시점으로 하여 승천 전의 무리 즉 살아서 구원 얻는 자들과 부활한 성도들 모두가 144,000을 이루고 승천 후의 동일한 무리 즉 큰 무리로 호칭된 걸로 간주해야 된다. 니올(Beatrice S. Neall)은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지상에 두 개의 다른 백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을 요한계시록은 지지하지 않는다. 요한은 항상 하나의 백성만을 염두에 두고 “그 종들”(1:1), “남은 자손”(12:17), “성도들”(14:12) 등으로 지칭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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