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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것과 막막한 것

Author
church admin
Date
2026-01-14 15:53
Views
99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 중학교 국어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글에 '막연하다'가 나왔기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 단어를 들으면 뭐가 생각나는지 물어보니, 연막탄이 터지면서 연기가 자욱해지고 그래서 뭐가 흐릿해지면 그게 막연한 게 아니냐고 하더란다. 엉뚱하지만 제법 괜찮은 추론이다. 이어서 '막막하다'는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어보았다. 막 걱정되고 막 답답하니까 막막하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고, 망막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앞이 캄캄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기발하고 재치가 넘치지만 이상하긴 하다.

이 일화를 가져온 것은 학생들의 문해력 얘기를 하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단어의 뜻은 꺼내 놓고 이야기하고 스스로 뜻을 찾아보고 확인하는 가운데 정교화되기 마련이고, 그 시간과 계기를 잘 마련해 준다면 학생들은 정확한 뜻을 잘 찾아갈 것이다.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따라 조금 뜻이 다르지만 '막연(漠然)하다'는 대체로 뭔가 뚜렷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막막하다'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막막(漠漠)함은 넓고 멀고 아득한 것을 뜻하고, 막막(寞寞)함은 외롭고 쓸쓸한 것 또는 꽉 막혀 답답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살길이 막막하다"라고 말했다면 앞날이 아득하고 대처할 방법이 뚜렷하지 않아 막연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생계를 이어 나갈 방법이 별로 없어 답답하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니, 이 말을 사용한 맥락을 보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꽤 권위 있는 사전 중에 '막막(漠漠)하다'에 앞서 말한 '막막(寞寞)하다'의 뜻의 일부를 포용해 놓은 경우도 있다. 이 사전에서는 감정적으로 느끼는 답답한 상태는 '막막(漠漠)하다'의 풀이로 삼았고,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무엇이 들어차 막힌 것을 가리킬 때만 '막막(寞寞)하다'고 정의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사전끼리 통일성도 없고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멀고 넓은 상태가 아득한 인식으로 전이되고, 아득하다는 인지는 다시 답답한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휘가 그렇게 뜻의 영토를 넓혔다고 보는 게 편할 것 같다.

참, 재미있게도 사전에 실제로 '망막(茫漠)하다'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망막하다'의 '망'은 '망망대해'에서 쓰인 한자와 같다. 예를 들자면 '망막한 우주'와 같은 표현으로 쓸 수 있다. 새해 초사흘 첫 보름이 지나 어느새 거의 그믐이 다 되었는데, 차가운 밤하늘도 참 망막하다. 다음 그믐 지나면 설이겠다

 

글 -강남욱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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