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주는 계시

음악이 없는 생은 잘못된 생이며, 꿈을 잃은 유배된 삶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잠들지 않고도 꾸는 꿈, 음악은 어떤 문학이나 철학보다 더 높고 그윽한 계시를 암시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혼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프리즘을 제공해줍니다. 그리하여, 시의 새벽과 생존의 한낮 그리고 사색의 저녁이 끝나는 곳에 치유의 밤은 고요히 음악으로 깊어갑니다. 그것은 잔잔한 물결의 파문처럼 다가오지만 영혼을 파고드는 파급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걸작품 (Magnum Opus)은 물론 생 그 자체이겠지요. 그러나 그 안에 운명처럼 내재하는 혼잡한 언어와 제한된 지성 그리고 사상의 다양성은 인간 삶의 한계를 설정하고, 음악을 포함한 예술은 이 숙명적 한계를 초월적 감성으로 극복하려는 인간의 끈질긴 집념이요 시도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면, 순수음악이 어쩌면 이 침묵의 공백을 어느 정도 채워주고 보상해줄 지도 모릅니다.
개념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의 깊은 본질을 오롯이 소리로 드러내는 것이 음악입니다. 존재의 비밀이 그 속에 숨어있는 순수음악은 한 마디로 언어를 초월하는 생의 철학이기도합니다. 음악 자체가 이미 풍부한 언어이며, 생의 음악적 주석입니다. 개념은 추상적이고 피상적이지만, 음악은 생의 내밀한 핵심을 직접 소리로 전달합니다.
갈증과 배고픔에 부단히 시달려야 하는 전설의 탄탈로스처럼 인간은 언제나 욕망에 굶주리며 살아갑니다. 둑 안에 갇혀있던 서정의 샘이 터지면서, 내면을 흥근히 적시며 도도한 물줄기로 흘러내리는 선율이 인간의 이 끝없는 욕망의 불을 끄고 달래줍니다. 나아가 무개념성, 무목적성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칸트의 주장 처럼, 음악은 대상에 구속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보편적인 예술의 창입니다.
실로 고상한 예술인 음악은, 현기증을 일으키며 사납게 회전하는 이생의 차륜 밑에서 시달리는 그 많은 잿빛 시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극히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며, 꺼져가는 삶의 의욕에 다시 불을 지펴줍니다. 때로는 더욱 멋지고 더 아름다운 세계로 잠겨들게 하며, 때로는 감미롭고 신성한 화음을 통하여 우리 앞에 신비스러운 시간의 하늘을 열어줍니다.
음악은 신비의 의미를 추구하도록 우리 영혼을 유도합니다. 우리의 심장에 영혼을 불어넣고 의식에 날개를 달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줍니다. 때때로 가을 바람처럼 우리를 사로잡아 먼 곳으로 데려가기도하고, 봄 바람처럼 포근히 안아 솜털 구름 위에 사뿐히 올려놓기도합니다. 밤의 적막에 파묻혀 고요한 음악을 듣고, 고운 선율의 밀물에 밀려 내면의 무의식 속으로 깊히 침잠하거나, 서서히 퇴각하는 섬세한 가락의 썰물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 떠밀려 가기도합니다.
때로는 위안과 평안이되고, 마음의 강으로 흐르는 기도가 됩니다. 음악은 말없는 치유입니다. 내가 뿌린 고독, 내가 키운 비애의 싹이지만, 음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치유해 줍니다. 때로는 따스한 위로의 말을 건네오고, 기댈 어깨를 빌려줍니다. 육체의 시공을 빠져나와 영원으로 달려가는 영혼의 바람소리같은 심오한 아다지오, 뼈 속 깊이 저려오는 음울한 안단테 칸타빌레, 낭만의 언덕에서 느닷없이 불어오는 사랑의 세레나데는 은근한 그리움으로 메아리치고, 가장 슬픈 이야기를 담은 애가의 단조는 놀랍게도 가장 달콤한 음악으로 변조되어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하늘과 통하려는 부단한 종교적 노력이 음악으로 승화하여 올라갑니다. 종교음악은 영성을 강화하고 하나님의 품을 느끼게하는 영적 도구입니다. 그리하여 바하를 음악의 아버지로,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교회음악이 태어나 양육되었고, 교회음악을 바탕으로 고전음악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음악을 <선의 이데아>의 모방으로 까지 격상시켰습니다. 음악은 공간적 구성을 전혀 갖지않는, 소리 만을 소재로 일정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는 순수한 시간예술입니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성의 남여나 시간의 고금을 통털어 한결같이 일치하는 인간감정의 동일성 위에 음악의 무한한 확장성이 놓여있습니다. 바로 제한 없는 음악의 보편성입니다.
왜 우리가 슬픔 속에 빠져있는지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하지만, 단지 슬퍼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만은 확실합니다. 생명의 꽃잎을 함초롬이 적시는 맑은 새벽 이슬처럼, 두 눈에 고이는 감동의 눈물은 피곤한 영혼을 달래주는 시원의 음악소리에 묻혀서 아침 이슬처럼 반짝입니다. 아마도 한번쯤은 가슴 저미는 선율을 들으며 행복의 달빛 아래서 초록빛 나무를 부둥켜 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순수음악은 몸과 마음의 치유이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순수한 정신적 체험이며, 시원의 소리에의 접근이고 신비에의 추구입니다.
음악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내면적 그림의 순수한 표상입니다. 얼룩진 자아를 씻어 내리는 정화(Catharsis)의 강으로 흐르는 음악이면 더욱 그러하지요.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의 의미있는 배열이고, 순수음악은, 작곡가의 삶의 가치와 종교적 영성을 깊이 바닥에 깔고 있으며, 그의 고유의 감성으로 깊은 명상과 처절한 고뇌를 통하여 내면에 침전된 예술적 가치를 의미있는 소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음악은 푸근한 밤의 가슴에 외로이 얼굴을 파묻고 사는 지친 영혼에게 영감을 주고 흐트러진 삶을 고쳐 펴줍니다.
음악의 생명적 숨결이 여린 심장을 뛰게하고, 그 성스러운 감동의 물결이 우리의 허기진 영혼을 가득 채워줍니다. 그리하여 음악과 시가 있는 한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청춘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현재(Nunc Aeternum)인 신의 임재와 거룩한 음악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 있으며, 그 좋아하는 음악이 자신의 문화와 교양과 감성의 질을 대표하는 매체가 됩니다. 부정적 감정을 내면에서 몰아내고 대신 조화로운 감정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음악은, 그래서 약(藥)이 악(樂)에서 유래된 것처럼 고대로부터 병의 치유나 회복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은 실제로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킵니다. 이렇게 뇌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려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밤에 연인의 집 창가에서 연주되던 사랑의 노래는 우리의 가슴을 물흐르듯 서정의 낭만으로 애무하며 쓰다듬고 적시며 지나갑니다. 외로움은 병입니다. 불신의 바벨탑을 쌓아 마음의 흉벽을 구축하여 끝내는 우울 속으로 자신을 가두거나 익사시키는 요상한 병입니다. 특별히 음악은 외로운 영혼의 가장 친밀한 예술이요 벗입니다.
음악은 기쁨과 슬픔이라는 날줄과 씨줄로 생의 피륙을 짭니다. 이 복합적이며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다양한 체험의 음악을 그저 한두 번 듣는 것으로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들어야 음악이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 삼투되어 내면에 침전됩니다. 선율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은 그만큼 개체의 생김새와 개성과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술은 뻣뻣한 사람에게는 감성을 불어넣고, 인간의 야만성에게는 이성을 불어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술을 배우면,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성숙한 인간이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통하여 애지중지 보물처럼 사 모은 800여 장의 CD는 골동품으로 변신하여 고스란히 벽장에 갇혀있습니다. 이제는 매체들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접근할 수있는 클래식 음악의 광활한 들판에 들어서서, 예술의 밝고 부드러운 빛, 삶 자체의 신비와 순수성 그리고 나아가 생의 장엄함과 그 영원성 까지 추구해 보려던 진지함의 세월이 갸륵하기만 합니다. 나의 얼룩진 영혼으로부터 일생의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무슨 음악을 들으면서 죽음을 맞이할까를 궁리하는 요즈음, 선호하는 음악의 장르가 아침저녁 변하고, 듣고픈 곡명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겸허한 성도의 삶과 죽음에 어울리는 바하 음악의 언저리에서 한 곡쯤 발견한다면 충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는 천사들이 연주하는 천상의 음악이 영원토록 이어질 테니까요. 지상의 음율도 몇 개는 참으로 깊고 아름다운데, 천상의 화음은 얼마나 심원하고 오묘하며 우주적일까요?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글 남명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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