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
Author
church admin
Date
2024-05-16 01:06
Views
27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를 만난 사건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길에서”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
바울은 “지성소”에서 예수를 만났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장소(다메섹 노상)가 바로 지성소란 말이다.
우리는 아주 단순한 대 원칙을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데,
그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직접 만나실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 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직접 만나면 인간은 죽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려면 환경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데,
만들어 놓은 장치가 바로 성소인 것이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출25:8)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고 …”(출25:22)
인간이 범죄한 후 이 조건은 재림 때까지 유효한 것이다.
첫째: 계명
둘째: 그리스도의 피
이 두가지가 지성소가 성립되는 환경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계명하면 “공의”라고 만 단순히 정의 하는 데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의 개념은 그 범위가 휠씬 넓다.
“공의”란 법적인 개념도 포함 되지만,
또한 governance, 통치 개념도 포함 된다.
즉 계명의 공의는 막강한 권능과 위엄을 가진 절대자가
공정하게 법을 다스린다는 개념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 가운데 계신 자신의 위엄과 권능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 모습을 글자로 돌비에 세기셨다.
이 계명을 받은 인간은 이 계명을 통해서 위엄과 권능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 reverse engineering 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명을 통해서 모세가 보았던 그 불 가운 데 계셨던
권능의 여호와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명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지키느냐 혹은 않지키느냐의
법의 개념 뿐 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공의의 개념은 우리의 월등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계명은 하나님의 성품, 성격, 직위를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그 단순한 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격과 품위를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단순하게 말한다.
도대체, 바울에게 그 순간 무슨일이 있었던가?
바울은 노상에서 위엄과 엄청난 빛 가운데 계신 우주를 통괄하시는 통치자이신 예수를 본 것이다.
사회를 소요케하던 초라한 나사렛 예수의 모습과는 엄청난 그 괴리에,
그만 기절 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실수와 오판, 동시에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서
스스로 죄인 임을 깊이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계명의 순 기능인 것이다.
초 죽음이였던 그 순간,
그에게 용서가 주어진다.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 9:6)
계명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죽을 죄인임을 깊이 느끼는 순간,
용서를 받고 은혜의 감동이 전율하는 곳이 바로 지성소인 것이다.
바울의 평생 복음과 신학은 이 길거리 지성소에서 체험한 것이였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이란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을 두 얼굴로 나누어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의 얼굴은 공의로 다스리시는 통치자의 얼굴이요.
다른 하나는 자비와 자기 희생의 십자가의 얼굴인 것이다.
이 둘이 합하여야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 그려지는 것이다.
공의의 얼굴을 통하여 겸손하게 된 인간이어야,
자비의 얼굴을 통하여 용서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요소가 각각 나누어져 인간에게 시현되는 장소가 바로 지성소인 것이다.
지성소에 왜 예수님이 계시는 지 그 이유를 알 만 하지 않겠는가?
이 지성소가 만들어내는 감동에,
“영”, “육” 간에 치유를 못 받을 인간이 있겠는가!
오! 탁월한 이 신학을,
우리는 언제까지 시렁위에 얹혀 만 둘 것인가?
계명을 주야로 묵상하자!
그 분의 한없이 높으심과 위엄을,
그리고 그것에 비해 나의 초라함과, 속절 없음을,
이사야가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고,
바울이 그러했던
떨림의 경험을 위해,
휘장을 열고 그에게 담대하게 나아가자,
재림교회의 교리로 만 남겨두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 은혜의 감동의 에너지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며,
동시에 나는 얼마나 속절없는 죄인 인가를 느끼는 것 만큼,
비례한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길에서”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
바울은 “지성소”에서 예수를 만났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장소(다메섹 노상)가 바로 지성소란 말이다.
우리는 아주 단순한 대 원칙을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데,
그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직접 만나실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나 생물학적으로 불가능 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직접 만나면 인간은 죽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려면 환경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데,
만들어 놓은 장치가 바로 성소인 것이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출25:8)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고 …”(출25:22)
인간이 범죄한 후 이 조건은 재림 때까지 유효한 것이다.
첫째: 계명
둘째: 그리스도의 피
이 두가지가 지성소가 성립되는 환경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계명하면 “공의”라고 만 단순히 정의 하는 데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의 개념은 그 범위가 휠씬 넓다.
“공의”란 법적인 개념도 포함 되지만,
또한 governance, 통치 개념도 포함 된다.
즉 계명의 공의는 막강한 권능과 위엄을 가진 절대자가
공정하게 법을 다스린다는 개념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 가운데 계신 자신의 위엄과 권능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 모습을 글자로 돌비에 세기셨다.
이 계명을 받은 인간은 이 계명을 통해서 위엄과 권능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 reverse engineering 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명을 통해서 모세가 보았던 그 불 가운 데 계셨던
권능의 여호와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명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지키느냐 혹은 않지키느냐의
법의 개념 뿐 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공의의 개념은 우리의 월등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계명은 하나님의 성품, 성격, 직위를 표현한 글자인 것이다.
그 단순한 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격과 품위를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단순하게 말한다.
도대체, 바울에게 그 순간 무슨일이 있었던가?
바울은 노상에서 위엄과 엄청난 빛 가운데 계신 우주를 통괄하시는 통치자이신 예수를 본 것이다.
사회를 소요케하던 초라한 나사렛 예수의 모습과는 엄청난 그 괴리에,
그만 기절 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실수와 오판, 동시에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서
스스로 죄인 임을 깊이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계명의 순 기능인 것이다.
초 죽음이였던 그 순간,
그에게 용서가 주어진다.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 9:6)
계명앞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죽을 죄인임을 깊이 느끼는 순간,
용서를 받고 은혜의 감동이 전율하는 곳이 바로 지성소인 것이다.
바울의 평생 복음과 신학은 이 길거리 지성소에서 체험한 것이였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이란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을 두 얼굴로 나누어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의 얼굴은 공의로 다스리시는 통치자의 얼굴이요.
다른 하나는 자비와 자기 희생의 십자가의 얼굴인 것이다.
이 둘이 합하여야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 그려지는 것이다.
공의의 얼굴을 통하여 겸손하게 된 인간이어야,
자비의 얼굴을 통하여 용서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요소가 각각 나누어져 인간에게 시현되는 장소가 바로 지성소인 것이다.
지성소에 왜 예수님이 계시는 지 그 이유를 알 만 하지 않겠는가?
이 지성소가 만들어내는 감동에,
“영”, “육” 간에 치유를 못 받을 인간이 있겠는가!
오! 탁월한 이 신학을,
우리는 언제까지 시렁위에 얹혀 만 둘 것인가?
계명을 주야로 묵상하자!
그 분의 한없이 높으심과 위엄을,
그리고 그것에 비해 나의 초라함과, 속절 없음을,
이사야가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고,
바울이 그러했던
떨림의 경험을 위해,
휘장을 열고 그에게 담대하게 나아가자,
재림교회의 교리로 만 남겨두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 은혜의 감동의 에너지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며,
동시에 나는 얼마나 속절없는 죄인 인가를 느끼는 것 만큼,
비례한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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