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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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admin
Date
2024-05-0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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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그 자체가 생의 기쁨이요 빛나는 가치입니다. 일은 생의 엄격한 요청이자 법칙이지만 쉼은 삶의 보람이요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율법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서로를 포옹하듯이, 쉼은 더 높은 가치로서 일을 너그럽게 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들 중에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것은 아마도 안식일 제도일 것입니다. 안식일에 얽혀있는 따스한 진리와 포근한 사랑 그리고 그 궁극적 의미는 너무나 깊고 오묘한 비밀이라 속속들이 다 알기는 어렵고, 우리의 지각에 잡힌 의미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안식일이야말로 피조물의 존재를 가장 고귀한 것으로 확인시켜주는 황금사슬이고, 그 외연을 가장 아름답게 꾸며주는 황홀한 날개라는 점입니다.
아브라함 헤셸은 유대교가 공간의 종교가 아닌 시간의 종교라는 독특한 성격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성서는 공간보다 시간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시간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이라고 까지 주장합니다. 등산 도중의 휴식은 산에 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산을 느끼면서 땀을 씻고 주변에 펼쳐진 전망을 통해 등산의 목적인 자연과 생을 즐기는 질적인 시간이 바로 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연과 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질병과 불행에 더 가까워집니다. 매주 하루 안식일을 지키면서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고, 지병은 나았으며, 소중한 자신을 재발견하고, 존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지혜를 깨닫게 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고백합니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시간이라는 영적이고 경이로운 나라에서 그날을 <즐거운 날>이라 부르며 창조주를 찾고 주신 생을 즐기고 예찬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세파를 헤치며 오는 동안 갈가리 찢어진 삶을 싸매고 수선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사막을 걷는 낙타가 힘이 들어 다리가 휘청거리면 그때가 바로 무릎을 꿇는 시간이듯이, 우리 삶의 숨결이 힘을 잃을 때, 길게 한 숨을 돌리고 다시 삶을 가다듬는 날이 쉼의 날입니다. 무서운 적막과 고독의 파도를 헤치고 안전한 해안으로, 창조주의 넉넉한 품으로 돌아가는 맘 설레는 귀향의 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의 의미를 일찍 발견하고 매일의 삶에 수용한 우리 재림성도들은 참으로 복받은 백성들입니다.
우수한 인재를 만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하지 않는 시간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세계의 지성과 세기의 부를 주름잡고있는 유대 문화의 핵심에 안식일이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날에 온 가족은 물론 나그네와 짐승까지도 쉬게 하라고 배려하셨습니다. 어느 종교나 철학에서도 쉼의 문제를 이토록 중요하게 취급한 경우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잠간 쉬어라'는 말씀은 매우 단순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의 쉼은 맛보기의 쉼이고 그야말로 잠간 쉬는 쉼이지만, 진짜 쉼인 영원한 쉼의 예행연습이기 때문입니다.
씨앗 속에는 장차 나올 나무가 숨겨져 있듯이, 이 땅에서의 쉼은 미래의 하늘나라를 품고있는 현재의 작은 천국입니다. 광포한 시간의 바다, 격렬한 수고의 대양 한가운데 두둥실 떠있있는 평화의 섬입니다. 우리는 그 섬에 정박하여 쉬면서 인간 본연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합니다. 밀물처럼 쓸고간 생의 뒷자락에 따스한 시간의 위무와 훈훈한 저녁 놀의 위로가 안식일입니다. 쉼의 날이 있음으로 고난의 날들이 감미로워지고, 순수한 영혼은 참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기회가 주어집니다.
놀라웁게도 하나님은 인간 창조와 더불어 쉼의 문제를 파격적으로 십계명 속 그 중앙에다 격상하여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민족의 정체성을 토라와 안식일에 두고있는 유대인의 생활철학은 우리들 처럼 ‘열심히 일하라’가 아니라, ‘먼저 쉬고 후에 일하라’입니다. 놀라운 지혜입니다. 그래야 능률과 창의력과 속도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그들 생의 첫 날이 의미롭게도 안식일이어서 얼떨결에 쉬고 난 후 신혼 삶을 시작했던 사실에 그 기원을 두고있겠지요. 그들은 일을해서 쉼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창조의 엄청난 역사를 행하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선물로 주신 쉼을 함께 누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쉬고 후에 일하는 것이 지극히 성경적이고 창조정신에도 부합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을 위해 하루를 먼저 쉬고 엿새 동안 일하도록 에덴의 시간표를 친히 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존재(Being) 자체가 자녀로서의 권리로서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자연의 관리자로서의 행함(Doing)이 뒤따라오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자녀의 신분을 먼저 확인하고 이후에 해야할 본분을 찾으라는 뜻이겠지요. 쉼은 축복이며 자신의 발전을 이루는 길이요, 낭비가 아닌 여유입니다. 쉬 말라버리고 곧 끊겨질 삶에 다시 물을 주고 숨결을 북돋우어 주는 휴식입니다. 창세기에서 공간 위의 성소인 에덴동산과 시간위의 성소인 안식일을 창설하시고 인간을 신적 우정과 자연의 쉼에 초청하셨던 하나님은 먼 훗날 이 땅에 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들을 쉬게' 하시겠다고 옛 초청을 반복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힘들어하는 양들을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에 누이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휴가를 의미하는 바캉스(vacance)는 비어있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휴가 기간에 육체의 휴식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내면에 가득 들어있는 생활의 찌꺼기를 말끔히 비워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활도 쓰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 놓아야지 언제나 줄을 매어 두면 못쓰게 되고 맙니다. 사람은 그의 능력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능률적이고 눈부신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파멸을 안고 달리는 차가 됩니다. 일과 쉼의 균형이 퍽이나 중요한 이유입니다.
쉼(Rest)은 뒤를 돌아봄 즉 반성(Reflection)이고, 숨을 돌리고 원기를 회복함(Refreshment)이며, 내일을 위한 재창조(Recreation)입니다. 이처럼 시간의 세 시제를 망라하면서, 매 주일 이를 통해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일과 쉼 모두가 하나님의 선물이며, 쉼과 일은 결코 대립하는 두 개념이 아닙니다. 쉼과 일은 뗄 수 없는 관계로서, 일은 쉼을 불러내고 쉼은 일을 기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이 외적인 자유의 상징이라면 내적인 자유의 상징은 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노예적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도록 이 특별한 날이 주어진 것입니다.
안식일 휴식을 먼저 취하고 난 다음, 다음 날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창조의 리듬입니다. 일보다 먼저 안식이 있었고, 그래서 안식일은 삶의 막간이 아니라 삶의 절정이며 경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참된 쉼을 통해서 인간은 새롭게 거듭납니다. 소진이 아니라 충전의 삶은 창조적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온 땅을 통치하시고 운행하시며 우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몸소 쉬신 이유는 우리에게 이 고귀한 쉼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도 쉬었으니 너희도 쉬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와 안식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는 것은 의미롭습니다. 창조의 완성이 쉼이라는 뜻입니다. 일곱째날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날로서, 어떤 의미에서 창조의 동기유발이자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특히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선택 받은 백성들과의 관계를 확정하시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삼으셨습니다. 안식일이 워낙 독특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그날을 지키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자신의 백성이라는 표징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6일간의 노동 시간은 우리들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시간이고 하루의 안식은 하나님과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유대인의 고백처럼 안식일을 통해서 우리는 창조적인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간직해온 안식일에는 뒤를 돌아보고, 위를 올려다보며, 미래를 내다보는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이란 육체가 쉬는 동안 우리 영혼이 위의 세 가지 일을 하도록 하는 쉼표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삶의 의미를 되찾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위로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내면에서 울려오는 생의 약동과 삶의 파동을 거룩한 쉼을 통하여 이끌어내어야 합니다. 쉼, 하나님의 고요와 영원을 경험하는 시간, 그 쉼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완성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일의 완성과 쉼이 평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쉼과 일에 대한 성경적 사고는 명료합니다. 쉼이 없으면 미완성이고, 완성은 쉼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쉼은 시간 속에서 성취되는 영원의 작은 체험이며, 매 안식일은 이러한 쉼을 통하여 결국에는 우리를 영원의 지평에 이르게하는 순환의 연속이요 행복한 여정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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