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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여인=제주 홍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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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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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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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제주도를 여행할 기회가 생겨서 어느 곳을 갈까? 고민을 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성산 일출봉'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방문한 곳이 제주 4.3 평화기념관...

마지막으로 간 곳이 홍윤애(=홍의녀) 무덤이다.

시간나는대로 그날에 감동과 기억들을 '기행문'에 담겠지만,

가장 먼저 사랑과 의리의 대명사.. 조정철/홍윤애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한다.

조선시대 유배지로는 제주도>진도>강화도(교동도) 등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가장 긴 유배생활을 한 사람은 '조정철'이다.

다산 '정약용' 역시 긴 유배생활로 유명하다.

특히... 정약용은 <18>이라는 숫자와 친하다.

18년의 관직생활, 18년의 유배생활, 그리고 유배가 끝나고

18년 뒤에 죽었으니 ~!

조정철의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

할아버지는 '조겸빈',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조영순'.

어머니는 '김시눌'의 딸이다.

조정철은 1751년 영조 27년에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났으며,

1775년(영조 51년) 24살 나이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하지만 1777년(정조 1년) 별감에 재직 중에 강용휘 등이 정조를 시해하려한

사건에 조정철의 장인(형조판서 홍지해)이 연루되어 '연좌제'로 형틀에 묶인다.

조선시대는 '연좌제'의 나라였으니 처갓집 잘못으로 '조정철' 역시 처벌을 받았고,

죄책감에 부인 홍씨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조정철 역시 처형될 벌이지만, 전 우의정 조태채의 증손자임이

참작되어서 제주도로 '유배'된다.

하여간 그렇게 그는 27세부터 귀향살이가 시작되었다.

유배생활은 혹독한 감시 하에 외출금지와절망 속에 그는 무려 29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비온 후 날씨 맑아

바다 빛 짙푸르러 아득히 만리가 평탄해

우뚝 솟은 누각 붉은 난간에 신기루 맺어

가파른 성가퀴에 고래가 흰 눈을 뿜은 듯한 파도

조잘대는 남녘 사투리 처음 들을 때 괴이해

보일 듯 말듯 밀려 있는 고깃배 보기에 놀라워

북쪽 바라보면 외로운 구름, 어느 곳에 있을까

두 줄기 맑은 눈물 절로 마구 흐르네

그런데 고달픈 유배 생활을 해야 했던 조정철에게 이웃집에 살던 스무살 처녀

<홍윤애>가 등장한다.

제주도 향리의 딸 홍윤애(洪允愛, ?∼1781).

감시가 심한 중죄인의 적소에 남몰래 드나들며 조정철을 뒷바라지 했다.

유배 온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큰 죄다.

하지만, 홍윤애는 '비바리'(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하는 처녀)를 하면서

'조정철'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첫째 부인과 똑같은 홍씨인 홍윤애를 조정철은 크게 사랑했다. ~

조정철이 그녀를 기다리며 쓴 <사랑의 시>이다.

사람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고

외로운 달 삼경이 되려는데

손 짐 지고 텅 빈 마당에 서니

솔바람은 맑기만 하네

현재 홍윤애 묘 입구에는 안내판을 대신해서 아래 사진과 같은 기념비가 서 있다.

img.jpg

조정철이 제주도에 유배 온지 4년만에(1781년 2월) '딸'이 태어났다.

(홍의녀 나이 20세, 조정철 31세 정도)

하지만 그것이 기쁨이 아니라 슬픔의 원인이 된다.

죄인처럼 살아야 할 '조정철'이 딸을 낳았으니, 홍윤애는 딸을 언니에게 맡겨서

제주도 애월읍에 어떤 '절'로 보낸다.

딸이 태어난 다음 달 '김시구'가 제주 목사로 부임해왔다.

김시구는 남인 출신으로 노론인 조정철 집안과는 대대로 원수 집안이다.

반대파의 씨를 말릴 생각으로 김시구는 조정철의 죄를 찾아내기 위하여

홍윤애를 잡아다가 사람이 할수 있는 고문을 이용하여,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

조정철이 유배 생활태도와임금이나 조정 대신을 비방한 자료를 강요하며

고문했지만, 곤장 70대를 맞아서 온 몸이 다 부서졌다.

홍윤애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 말을 해서 조정철이 피해를 받을까봐서..

딸을 낳은 지 3개월 만인 윤오월 15일 (옥중에서) 목숨을 끊는다.

그녀의 나이는 고작 20세였다.

당시 조정철은 귀향살이 중이었고, 홍윤애 죽음 소식을 듣고

쓴 시는 다음과 같다.

은하수는 역력히 일 년을 느릿느릿

하늘 위 두별 비로소 만날 때

괴로워하는 인간의 무한한 생각

무덤에서 서로 만날 때도 혹 이러할까 ~

조정철이 역모를 꾸몄다는 '김시구'의 거짓 장계(편지)가 거짓이 밝혀져

김시구가 부임된지 4개월 만에 제주 목사(도지사)에서 파직되고 유배형을 받게 된다.

홍윤애의 희생(고문과 죽음)으로 인하여 '조정철'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정철'도 거짓보고로 인하여 고문을 당해야 했고,

유배지는 제주도 정의현(지금의 성읍민속촌 지역) ->추자도 -> 광양 -> 구례

-> 황해도 토산 등등으로 계속 옮겨 다녀야 했다.

1805년 55세에 29년의 유배에서 풀려났으며, 관직에 복귀한다.

마침내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조정철은 형조판서, 지중추부사등을 지내다

1811년 환갑의 나이에 제주목사겸 전라도 방어사로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제주도에 도착 하자마자 홍윤애의 무덤부터 정비하고,

통곡하며 묘갈명(墓碣銘, 무덤 앞 비석에 새기는 글)을 썼다.

옥 같이 그윽한 향기 묻힌 지 몇 해인가 /瘞玉埋香奄幾年(예옥매향엄기년)

누가 그대의 원한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었으리 /誰將爾怨訴蒼旻(수장이원소창민)

황천길은 멀고먼데 누굴 의지하여 돌아갔을까 /黃泉路邃歸何賴(황천로수귀하뢰)

진한 피 고이 간직하니 죽더라도 인연으로 남으리 /碧血藏深死亦綠(벽혈장심사역록)

천고에 높은 이름 열문에 빛나고 /千古芳名蘅杜烈(천고방명형두열)

일문에 높은 절기 모두 어진 형제였네 /一門雙節弟兄賢(일문쌍절제형현)

아름다운 한 떨기 꽃 글론 짓기 어려운데 /烏頭雙闕今難作(오두쌍궐금난작)

푸른 풀만 무덤에 우거져 있구나 /靑草應生馬鬣前(청초응생마렵전)

조정철은 27년의 '제주유배생활'을 기록한 문집인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에

시 635수와 유배생활의 기록을 남겼다.

(홍윤애 묘비 뒷편에 적힌 초모시)

img.jpg

아래 글 : 조정철이 쓴 글을 그대로 옮김

홍윤애 = 홍의녀 = 홍랑

“홍의녀(洪義女)는 아전 홍처훈(洪處勳)의 딸이다.

1777년에 내가 죄인으로서 이곳에 안치되었을 때,의녀는 나의 적소를 출입하였다.

1781년에 제주목사가 의녀를 미끼삼아 내 죄를 꾸미고자 의녀를 문초하였다.

혈육이 낭자하여 죽게 되었지만, 의녀는 ‘공의 목숨이 나의 죽음에 있다’고 하여

불복하고, 형틀에 매달려 순절한 것이 그 해 윤 5월 15일이다.

그 뒤 31년이 흘러 내가 임금의 은총을 입어 이곳에 방어사로 오게 되었다.

여기에 묘비문을 지어 기리노라.”

조선시대 배경으로 볼 때에, '열녀비'를 세우는 제도가 있었는데,

홍윤애는 공식적으로는 처녀로 죽었기에 '열녀비'는 세울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는 철저하게 유교문화 + 남성 중심 사회에서 고위직의 사대부가

여인의 무덤 조성하고, 비석을 세우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염집 여인의 묘에 ‘의녀(義女)’란 비명을 새기고

위령제를 지낸 기록도 없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정철의 행동은 참으로 의리가 있다고 볼수 있다.

아래 사진: 좌측 무덤이 홍윤애

홍윤애 무덤 우측에 묘비석에는 홍의녀 지묘 라고 새겨져 있다.

img.jpg

홍윤애가 감옥에서 죽을 때 절로 피신한 딸은 '곽지리'에서 살았다.

조정철은 운명적으로 딸을 만나서 온갖 사랑을 베푼다.

홍윤애를 자신의 호적(족보)에 부인으로 올렸다.

그리고 제주목사 재임1년치 녹봉 전액을 (땅을 사서) 딸에게 줬다.

조정철은 제주 도지사로 있는동안 '제주'를 위하여 많은 선정을 베푼다.

그리고 일년 후 부산에 '동래부사'로 승진한다.

그가 부임하는 곳마다 좋은 정치를 베풀었다.

한편 1997년 '양주 조'씨 종친회는 홍윤애를 조정철의 정식 부인으로 인정하고

문중의 사당인 함녕재에 봉안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해마다 홍윤애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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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철 무덤을 찾지 못해서, 혹시라도 양주조씨 문중 무덤이 파주 민통선

안에 있다보니 그쪽에 조정철 무덤 역시 그쪽에 있을 것으로 추측했으나,

1994년 충주대 박물관팀이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하던 중에

돌고개 좌측(충주 수안보 방향)에서 조정철의 묘를 찾았다

img.jpg

아마도, 세번째 부인 영월신씨의 친정이 수안보 일대 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진제공: 이광국 여행전문가)

2013년 06월에는 홍윤애의 딸 무덤도 찾았다.

딸 양주조씨(1781-1863)와 사위 박수영(1783-1811)의 무덤은 애월읍 산간마을

남쪽 농지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비문내용>

'양주조씨'는 판서공 조정철의 딸이다.

건륭 신축(1781) 2월 30일에 태어났다.

박수영에게 시집가서 1남 2녀를 낳았다.

아들 '규팔'은 일찍 죽었고, 양자로 사촌형의 아들 종렬로 잇게 했다.

(박규팔의 무덤은 아래 사진에서 우측)

img.jpg

1811년에 제주도 '도지사'로 부임한 '조정철'은 홍윤애(홍의녀) 무덤을 크게

만들어 줬을 것이다.

하지만 1940년(일제강점기)에 도심에 '농업학교'를 건축하기 위해서

홍윤애 무덤을 '이장'하게 되었다.

어디로 옮길까? 고민하다가...

홍윤애의 유일한 후손인 외손자 박규팔 무덤 좌측에 묻은 것 같다.

조정철이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살다보니, 홍윤애 무덤을 들고 다닐 수는 없고,

조정철 세번째 부인(수안보) 옆으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네비게이션'에도 잘 나오지 않는 '홍의녀' 무덤을 찾아서 25km를 달려서 찾았다.

그녀의 큰 이름과 비하자면 다소 초라한 면도 있다.

어린 시절 사랑한 남자를 위하여 곤장 70대를 맞고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끝내 자신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 '홍의녀' 그녀는...

홍윤애 이름대신 '홍의녀'라는 이름을 받기에 충분하다.

다산 정약용 역시..유배중에.. 어떤 여인 사이에 딸(이름:홍임)을 낳는다.

훗날... 딸이 아비를 찾아서 남양주 집까지 찾아 왔지만..

본부인에게 들킬까 봐서.. 딸 대접을 제대로 못해 줬다.

그런것을 생각해보자면... 그래도.. 조정철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한

홍윤애에 대한 의리를 버리지 않았다.

2024년...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이혼과 배신이 흔한 이 시대에

조정철, 홍윤애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 끝 >

글 최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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